1426년 한양 대화재와 1666년 런던 대화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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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룡
공룡


아버지 태종이 죽고 세종8년 독자 정치한지 4년 되었다.
1426년 봄 세종과 세자 문종은 사냥 겸 군사훈련을 감독하러
강원도 횡성으로 행차를 했다.
세종은 떠나며 대신들에게 유사시 중전 소헌왕후 심씨에게
보고하고 지시를 받으라 명하였다.
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나고 황희 정승은 왕비에게 급보한다.
큰 서북풍을 타고 종묘와 도심까지 번지고 왕비는 결단을 내린다.
금은보화 창고와 세곡 창고를 포기하고 인명과 종묘, 창덕궁을 사수했다.
불은 하루밤 하루낮동안 도성 15% 주택과 관청을 전소시키고 진화되었다.
서둘러 상경한 세종과 문종이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끝난 상태였다.
실록에만 사망 32명, 부상 다수, 도성 13% 전소
만삭의 몸으로 상황을 진두지휘했던 왕비는 실신 상태이고
몇일후 왕자가 태어나니 그아이가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다.
조사 결과 도둑들의 방화로 밝혀졌고 장원만, 이영생, 김천용 등
여러명이 체포되고 능지형에 처해졌다.
세종은 이재민에게 구휼미와 면포를 풀고 화재 대비 도로를 넓히고
방화벽을 쌓고 주택 5집 건너 꼭 우물을 설치하게하고 주요 지역에
소화기를 비치하고 병조 예하에 금화도감을 신설해 화재를 예방한다.
금화도감은 거의 세계 최초의 공식적이고 규모있는 소방기관이다.
오늘날 소방서와 같은 역할이고 한국 최초의 소방기관이다.
1666년 런던 대화재는 더 처참했다.
지식 관심이 있다면 추천 누르시고 2부에서 런던대화재를 조명하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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